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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농구에서 '좋은 선수'의 기준을 득점이나 화려한 플레이에 두고 있었습니다. 농구대잔치 시절 허재와 강동희가 코트를 휘젓던 장면, 이상민의 눈이 번쩍 뜨이는 패스를 보며 자란 탓이겠지요. 그런데 양동근을 오래 보면서 그 기준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14시즌 동안 한 팀에서만 뛰며 정규리그 MVP 4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6회를 쌓아 올린 선수. 그 기록보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건 그가 그 자리에 서기까지의 태도였습니다.

원클럽맨이 쌓아 올린 기록들

양동근은 2004년 KBL 신인 드래프트(NBA 방식으로 말하면 NBA Draft에 해당하는, 프로구단이 아마추어 선수를 공개 선발하는 제도입니다)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됐습니다. 처음 지명 구단은 전주 KCC였지만, 외국인 선수 트레이드와 신인 지명권 교환이 맞물리면서 곧바로 울산 모비스로 이적했습니다. 그리고 상무 복무 기간을 빼면 이후 선수 생활 전부를 현대모비스 한 팀에서만 보냈습니다.

2004-2005시즌부터 2019-2020시즌까지 정규리그 665경기 출전. 이른바 원클럽맨(One-Club Man)이란 이적 없이 한 구단에서만 선수 생활 전체를 마친 선수를 일컫는 말인데, 한국 프로농구에서 이 정도 커리어를 한 팀에서 완성한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개인 수상 기록을 보면 더 선명해집니다. 신인왕을 시작으로 정규리그 MVP 4회, 시즌 베스트5 9회 선정, 어시스트 1위 2회. 팀 단위로는 챔피언결정전 우승 6회에 플레이오프 MVP도 3회 차지했습니다. 은퇴 당시 정규리그 MVP, 챔피언결정전 우승, 플레이오프 MVP 모두 KBL 역대 최다 기록이었습니다(출처: YTN).

제가 특히 기억에 남는 건 2014-2015시즌입니다. 이미 우승을 여러 번 경험한 30대 중반의 베테랑이었는데, 그 시즌 정규리그 52경기를 전부 소화하면서 당시 10개 구단 전체에서 가장 많은 출전 시간을 기록했습니다. 이미 다 이룬 선수가 왜 저렇게까지 뛰나 싶었는데, 돌아보면 그게 바로 그 선수의 본질이었던 것 같습니다.

수비형 가드로서 남긴 특별한 흔적

양동근은 공격형 포인트 가드(Point Guard, 팀의 공격을 조율하고 패스를 배급하는 가드 포지션)가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압박 수비와 체력을 앞세운 수비형 가드에 가까웠습니다. 수비형 가드란 상대 주전 가드를 집요하게 마크하고 체력 소모를 유도하는 데 특화된 포지션을 뜻하는데, 화려함보다 팀 기여도가 높아 팬들 눈에 덜 띄는 게 사실입니다.

당시 KBL에는 이상민, 김승현처럼 눈이 가는 패스와 센스를 가진 가드들이 있었습니다. 주희정처럼 빠른 발로 오래 버티는 스타일도 있었고요. 제가 직접 경기를 보면서 느낀 건, 양동근의 경기는 하이라이트 영상으로만 보면 임팩트가 약해 보인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런데 풀경기를 다 보고 나면 항상 그가 경기의 흐름 어딘가를 잡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의 역할은 KBL에서 가드를 평가하는 기준 자체에 영향을 줬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득점과 어시스트 외에 수비 기여도와 체력 관리, 팀 기여 같은 요소들이 주목받기 시작한 데 양동근의 커리어가 하나의 기준점이 됐다고 보는 것입니다.

국가대표 무대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대표팀 이상범 감독은 양동근을 주장으로 선택한 이유로 에이스이면서 잘할 때나 못할 때나 표정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을 꼽았습니다(출처: KBL 공식).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결승, 경기 종료 1분여를 앞두고 이란에 5점 차로 뒤지던 상황에서 양동근의 3점슛이 추격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결국 한국은 79대77로 역전승을 거두며 2002년 부산 이후 12년 만의 금메달을 땄습니다. 제가 그 경기를 보면서 느낀 건, 저런 상황에서 저 사람이 던지는구나, 하는 장면의 무게감이었습니다.

  • 정규리그 MVP 4회 — 은퇴 당시 KBL 역대 최다
  • 챔피언결정전 우승 6회 — 2006-07, 2009-10, 2012-13, 2013-14, 2014-15, 2018-19시즌
  • 플레이오프 MVP 3회 — 은퇴 당시 KBL 역대 최다
  • 2014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금메달
  • 등번호 6번 현대모비스 영구결번
요약: 양동근은 14시즌 원클럽맨으로 KBL 최다 기록을 복수 보유한 수비형 가드였으며, 화려함보다 팀 기여와 체력으로 커리어를 완성했습니다.

 

성실함이 전설이 되기까지

사실 전체 1순위 지명이라는 타이틀만 보면 처음부터 완성된 슈퍼스타였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달랐습니다. 오랫동안 양동근을 지도한 유재학 감독은 그가 프로 초기부터 이른바 '특A급' 선수였던 건 아니라고 회상했습니다. 양동근 본인도 이상민이나 신기성, 주희정, 김승현 같은 당대 최고 가드들에 비해 센스와 시야가 부족했다고 솔직하게 인정했습니다.

이 부분이 제가 가장 인상적으로 느끼는 대목입니다. 저도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나보다 아이디어가 빠른 동료,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동료를 보면서 기가 죽을 때가 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그럴 때 '나는 저게 안 되니까'라는 생각을 오래 붙들고 있으면 정작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도 놓치게 되더라고요.

양동근은 그 반대 방향을 택했습니다. 자신이 약한 부분을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핑계 삼지 않았고, 자신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수비와 체력, 돌파와 경기 운영을 계속 발전시켰습니다. 유재학 감독도 그 장점이 살아나도록 방향을 잡아줬고요. 이른바 포지셔닝 전략(Positioning Strategy, 자신의 강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역할에 집중하는 방식)을 선수와 지도자가 함께 찾아간 셈입니다.

그의 은퇴 기자회견에서 나온 말이 오래 남습니다. "오늘 큰 부상을 당해 더 이상 뛰지 못하게 되더라도 미련이 남지 않도록 어제와 오늘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뛰었다"는 취지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느낀 건, 이건 그냥 선수 생활 마무리하면서 하는 인사말이 아니라는 거였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을 미래 걱정으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오늘 훈련과 경기에 쏟아붓는 태도, 그게 14시즌을 버티게 한 연료였을 겁니다.

겸손함이 만들어낸 신뢰

제가 양동근 선수에게서 오래 배우고 싶은 건 사실 기록이 아닙니다. MVP를 네 번, 우승을 여섯 번 한 선수가 자신의 성공을 이야기할 때 "운이 좋았다"는 표현을 반복했다는 점입니다. 좋은 감독을 만난 것, 용산고와 한양대에 진학한 것, 좋은 동료들이 있었던 것. 자신이 이룬 결과를 오롯이 자기 능력으로만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성과 귀인(Attribution, 결과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느냐의 심리학적 개념입니다)에서 성공을 내부 요인으로만 돌리는 경향을 자기고양 편향(Self-serving Bias)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잘 됐을 땐 내 덕, 안 됐을 땐 환경 탓을 하는 심리인데, 많은 사람이 여기에 빠집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프로젝트가 잘 마무리됐을 때 제가 열심히 한 덕분이라고 먼저 생각했던 적이 솔직히 꽤 있었으니까요.

양동근이 수십 년 동안 '믿을 수 있는 선수'라는 평가를 받은 데는 이 태도가 분명히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잘됐을 때 같이 일한 사람들을 먼저 언급하는 사람은 다음에도 같이 일하고 싶어지게 만듭니다. 제 경우에도, 일이 잘 됐을 때 주변의 도움을 인정하는 말 한마디가 신뢰를 만드는 데 생각보다 훨씬 크게 작용한다는 걸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은퇴 후 양동근은 코치와 수석코치를 거쳐 2025년 현대모비스 감독으로 선임됐습니다. 감독 취임 당시 그는 "감독 자리는 경험을 쌓는 곳이 아니며 결과로 검증받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선수 시절부터 이어져 온 태도가 지도자가 된 뒤에도 달라지지 않은 겁니다.

요약: 부족함을 인정하면서도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성공의 공을 나누는 태도가 양동근 커리어의 진짜 바탕이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양동근은 왜 전체 1순위인데 KCC가 아닌 모비스로 갔나요?

A. 2004년 드래프트 전에 이루어진 외국인 선수 트레이드와 신인 지명권 교환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KCC가 전체 1순위로 지명했지만 이 교환 조건에 따라 양동근은 곧바로 울산 모비스로 향하게 됐고, 이후 14시즌을 그 팀에서만 보냈습니다.

 

Q. 양동근 KBL 최다 기록이 뭔가요?

A. 은퇴 당시 기준으로 정규리그 MVP 4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6회, 플레이오프 MVP 3회가 모두 KBL 역대 최다 기록이었습니다. 개인 수상과 팀 우승을 동시에 최다 기록으로 쌓은 경우는 KBL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Q. 2014 아시안게임 결승에서 양동근이 정확히 어떤 역할을 했나요?

A. 한국이 이란을 상대로 경기 종료 1분여를 남기고 70대75로 뒤지던 상황에서 양동근이 중요한 3점슛을 성공시키며 추격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김종규의 3점 플레이 등이 이어지면서 한국은 79대77로 역전승, 2002년 부산 이후 12년 만의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차지했습니다.

 

Q. 양동근은 은퇴 후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A. 현대모비스를 떠나지 않고 코치와 수석코치를 거쳐 2025년 현대모비스 감독으로 선임됐습니다. 선수로 입단한 팀에서 지도자까지 된 진정한 원클럽 인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Q. 양동근 등번호 영구결번이 맞나요?

A. 맞습니다. 은퇴 후 양동근의 등번호 6번은 현대모비스 구단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됐습니다. 영구결번이란 특정 선수를 기리기 위해 해당 번호를 이후 어느 선수도 달 수 없도록 영구적으로 보존하는 제도입니다.

 

결론

양동근의 커리어를 돌아보면서 제가 정리하게 된 생각은 하나입니다. 매일의 성실함은 그 자체로는 잘 보이지 않지만, 시간이 충분히 쌓이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기록이 된다는 것입니다. 40득점짜리 한 경기가 아니라 14시즌 동안 매 경기 코트에서 가장 많이 뛰기로 선택한 태도가, 결국 KBL에서 가장 많은 우승과 MVP를 가진 선수를 만들었습니다.

저도 단기간에 눈에 띄는 성과를 내는 것보다, 오래 시간이 지난 뒤에 '저 사람은 믿을 수 있습니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더 되고 싶습니다. 양동근이 보여준 것처럼 부족한 점을 인정하면서도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좋은 결과가 났을 때 주변 사람들의 기여를 먼저 말할 줄 아는 태도, 그게 오래가는 신뢰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당시 YTN 보도를 직접 찾아보셔도 좋습니다.

참고: https://www.ytn.co.kr/_ln/0107_202004011754177225?utm_sour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