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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잘하는 사람이 반드시 오래가는 건 아닙니다. 제가 직접 여러 사람과 일해보면서 느낀 건, 실력보다 태도가 관계의 수명을 결정한다는 겁니다. NBA 역사상 손꼽히는 빅맨 파우 가솔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 생각이 더 단단해졌습니다. 우승 반지 2개, 명예의 전당 헌액, 영구 결번. 숫자만 보면 화려하지만, 제가 더 인상 깊었던 건 그 자리에 오르는 동안 그가 어떤 사람이었느냐입니다.

 

겸손함이 성장을 만든 순간

코비 브라이언트는 경기장에서 파우 가솔에게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더티 플레이와 언어적 도발을 동원해 가솔을 압박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결승에서는 팀 동료였던 가솔을 상대로 냉혹하게 이겼습니다. 저는 처음 이 부분을 접했을 때 솔직히 "코비가 좀 심했던 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솔의 반응이 뜻밖이었습니다.

가솔은 그 압박이 자신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신을 개조시키기 위한 충격 요법이었음을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충격 요법이란 기존의 사고방식을 흔들어 새로운 행동 변화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쉽게 말해 "네가 지금 현실에 안주하고 있다"는 신호를 극단적인 방법으로 보내는 겁니다. 가솔은 그 신호를 받아들였습니다.

이후 가솔은 코비의 훈련 스케줄과 식단을 공유하며 프로 의식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NBA 정상급 빅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제 경험상 이런 선택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데 왜?"라는 자존심이 배움을 가로막는 경우가 훨씬 많았거든요. 가솔은 그 자존심을 내려놓은 덕분에 코비와의 시너지를 만들어냈고, 그 시즌 개막 한 달 만에 15경기 중 14경기를 이겼습니다.

  • 코비의 압박을 개인 공격이 아닌 성장 신호로 해석
  • 훈련 스케줄·식단 공유로 프로 의식 내면화
  • 개막 15경기 중 14승, 시너지가 즉각적인 결과로 연결
요약: 가솔의 성장은 실력보다 겸손하게 배우려는 태도에서 시작됐습니다.

 

코비와의 우정, 코트 밖에서 증명되다

2009년과 2010년 NBA 파이널에서 가솔이 보여준 활약은 수치로도 확인됩니다. 2009년 결승 상대였던 올랜도 매직의 드와이트 하워드는 리바운드왕·블록왕·수비왕을 독식하던 골밑의 제왕이었습니다. 여기서 블록왕이란 NBA 공식 시즌 기준 블록 슛 평균이 리그 전체 1위인 선수를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골밑에서 상대의 슛을 가장 많이 저지한 선수라는 뜻입니다.

가솔은 하워드와 정면 충돌하는 대신 미들 레인지 슛(골밑과 3점 라인 사이 중거리 슛)으로 득점을 올리며 하워드를 골밑 바깥으로 유인했습니다. 그 틈에 코비가 1차전 40점을 터뜨렸고, 레이커스는 25점 차 대승을 거뒀습니다. 제가 이 장면에서 인상 깊었던 건 가솔이 "내가 더 돋보이겠다"가 아니라 "팀이 이기려면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를 먼저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2010년 결승, 숙적 보스턴 셀틱스와의 7차전은 지금도 회자되는 명승부입니다. 가솔은 그 경기에서 양 팀 최다 18리바운드(공격 리바운드 9개 포함)를 기록했습니다. 경기 종료 40초를 남기고 코비의 3점 슛이 빗나갔을 때, 가솔이 공격 리바운드를 낚아채 코비에게 패스했고 코비가 파울을 얻어 자유투로 마무리했습니다. 우승의 마지막 퍼즐이 가솔의 손끝에서 완성된 겁니다. 출처: NBA 공식 기록

두 사람의 관계는 코트에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코비 사망 이후 가솔은 그의 딸들의 대부가 됐고, 자신의 친딸 미들네임을 코비의 딸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관계의 깊이를 드러낸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기준으로 보면 가솔과 코비의 우정은 설명이 따로 필요 없습니다.

요약: 가솔과 코비의 관계는 우승 파트너십을 넘어 삶 전반에 걸친 진짜 우정이었습니다.

 

레전드의 조건, 나이 들어서도 배우는 것

레이커스 시절 후반부, 가솔은 감독과의 전술 불일치와 팀원과의 불화, 잦은 부상으로 침체기를 맞았습니다. 연봉 대비 가치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으며 트레이드 루머에 시달렸고, 결국 레이커스를 떠나 시카고 불스로 이적했습니다. 당시 나이 34세, 솔직히 말하면 전성기 재현은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기록을 찾아봤을 때 꽤 놀랐습니다. 시카고에서 가솔의 시즌 평균 기록은 레이커스 우승 시절과 흡사했고, 리바운드는 오히려 커리어 하이를 찍었습니다. 단일 경기 46득점, 블록 9개 같은 개인 최고 기록도 이 시기에 나왔습니다. 더블더블(득점과 리바운드 모두 두 자릿수 기록)을 시즌 54회 달성해 리그 전체 1위를 기록했고, 올스타에도 재선정됐습니다.

흔히 노쇠화라고 하면 기량 저하를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노쇠화란 나이가 들면서 근력, 순발력, 회복 속도 등이 생리적으로 감소하는 현상으로, 대부분의 프로 선수들이 30대 중반 이후 성적이 떨어지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가솔은 이 흐름을 환경 변화와 역할 재정립으로 상당 부분 극복했습니다. 시카고의 탄탄한 수비 조직과 좋은 패스 합이 가솔의 강점을 살려줬고, 가솔 역시 자신에게 맞는 플레이 방식을 찾아갔습니다.

샌안토니오 스퍼스 이적 후에는 3점 슛을 새로 연마해 평균 53.8%의 성공률을 기록했습니다. 30대 후반에 새로운 기술을 익힌 겁니다. 제 경험상 이 나이에 익숙한 걸 버리고 새로운 방식으로 배우는 선택은 쉽지 않습니다. 가솔은 그 선택을 반복했습니다.

요약: 가솔은 34세 이후에도 환경에 적응하며 커리어 하이를 갱신한 보기 드문 선수입니다.

 

마지막 한 걸음, 코비에게 배운 열정으로

2020년 1월, 가솔은 수술 후 재활 중에 코비 브라이언트의 사망 소식을 들었습니다. 즉시 미국으로 달려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 무기력함이 얼마나 컸을지, 제가 온전히 공감하기는 어렵습니다. 가솔은 이후 몸을 추스르고 직접 유족을 찾아가 위로했고, 코비의 딸들을 돌보는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그리고 가솔은 은퇴하지 않았습니다. 코비에게 배운 열정을 다시 불태워 자신의 첫 프로팀이었던 스페인 FC 바르셀로나와 계약했습니다. 40세 나이에 돌아온 겁니다. 거기서 가솔은 플레이오프 매 경기에 출전했고, 결승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꺾으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습니다. 필드골 성공률 60%를 유지하며 두 자릿수 득점을 이어갔습니다. 유로리그(EuroLeague)란 유럽 최고 클럽 농구 대회로, NBA 다음으로 수준 높은 리그로 평가받습니다. 그 무대에서 40세 가솔이 보여준 마지막 시즌은 단순한 은퇴 선물이 아니라 코비에 대한 헌사처럼 느껴졌습니다. 출처: EuroLeague 공식 홈페이지

2023년 가솔의 레이커스 영구 결번식이 열렸습니다. 코비의 등번호 옆에 나란히 걸린 가솔의 번호를 보며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성공의 크기보다 그 자리에 오르는 동안 주변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 그리고 잃은 것 앞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가 결국 사람을 기억하게 만든다고요.

요약: 가솔의 마지막 시즌은 코비에게 배운 열정을 끝까지 실천한 유종의 미였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파우 가솔은 NBA에서 몇 번 우승했나요?

A. LA 레이커스 소속으로 2009년과 2010년 두 차례 NBA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두 번 모두 코비 브라이언트와 함께했으며, 특히 2010년 보스턴 셀틱스와의 7차전은 가솔의 18리바운드와 마지막 공격 리바운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Q. 코비 브라이언트가 가솔에게 왜 그렇게 심하게 대했나요?

A. 코비는 가솔이 이미 실력은 갖췄지만 우승을 향한 멘탈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고, 도발과 압박으로 그 정신을 단련시키려 했습니다. 가솔 스스로 이를 충격 요법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이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오히려 더 단단해졌습니다.

 

Q. 파우 가솔은 어떻게 나이 들어서도 활약할 수 있었나요?

A.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유연함이 핵심이었습니다. 시카고 불스에서는 팀 패스 시스템에 맞는 역할을 찾아 커리어 하이 리바운드를 기록했고, 샌안토니오에서는 3점 슛을 새로 익혔습니다. 40세에 바르셀로나로 돌아가 우승으로 마무리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Q. 파우 가솔과 코비 브라이언트의 우정이 특별한 이유는 뭔가요?

A. 코트 안에서의 파트너십을 넘어 코비 사망 이후에도 이어진 관계 때문입니다. 가솔은 코비의 딸들의 대부가 됐고, 자신의 친딸 미들네임도 코비의 딸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시상식마다 코비를 그리워하며 눈물을 보이는 가솔의 모습은 그 우정이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

 

결론

파우 가솔의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건 "실력 있는 사람이 겸손하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빅맨이었던 가솔이 코비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34세에 새로운 팀에서 다시 배우고, 40세에 첫 프로팀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는 사실은 능력보다 태도가 얼마나 오래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일하면서 느낀 것도 비슷합니다.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잘하면서도 주변 사람을 존중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 드문 사람이 결국 오래 기억됩니다. 파우 가솔의 전체 커리어가 궁금하다면 아래 영상을 직접 보시는 걸 권합니다. 숫자가 아닌 사람 이야기로 가득한 농구 레전드의 이야기입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ojUCFMqSAK8&t=9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