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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55, 26점 차 완승. 숫자만 보면 한국 남자농구가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완벽한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결과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12년 만의 금메달 탈환이라는 목표 앞에서, 이 경기가 정말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26점 차 완승, 그런데 상대가 완전체였나요?
필리핀은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농구 금메달리스트입니다. 디펜딩 챔피언이자 현재 FIBA 랭킹에서도 한국보다 앞선 팀입니다. 여기서 FIBA 랭킹이란 국제농구연맹(FIBA)이 각국 대표팀의 국제대회 성적을 집계해 산출하는 공식 세계 순위로, 단순한 명예가 아니라 대회 시드 배정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칩니다(출처: FIBA 공식 홈페이지).
그런데 이번 평가전에 방한한 필리핀 멤버를 확인하는 순간 저는 솔직히 '이건 다른 이야기'라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직전 FIBA 월드컵 예선에서 뛰었던 선수 가운데 이번 원정에 합류한 선수는 저스틴 발타자르, 저스틴 아라나, RJ 아바리엔토스 단 3명뿐이었습니다. 거기다 필리핀의 핵심 귀화선수인 저스틴 브라운리는 부상 회복 문제로 아시안게임 출전 자체가 불투명한 상황이었습니다.
귀화선수(naturalized player)란 출생 국적이 아닌 나라의 시민권을 취득해 그 나라 대표팀으로 뛰는 선수를 말합니다. 필리핀은 오랫동안 이 제도를 적극 활용해 NBA급 신체 조건을 갖춘 선수를 국가대표로 합류시켜 왔고, 브라운리의 공백이 얼마나 큰 변수인지는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입니다. 현지 보도 역시 이번 결과에 대한 과잉 해석을 경계하며 필리핀 핵심 전력의 이탈을 명시적으로 지적했습니다. 26점 차라는 숫자를 두 팀의 실제 전력 격차로 그대로 읽으면 곤란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정현과 이현중, 두 축이 보여준 것
경기 내용 자체는 분명 볼 것이 있었습니다. 이정현이 3점슛 7/11, 27점 5어시스트를 기록하며 공격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특히 3쿼터 무득점 침묵 이후 4쿼터 초반에 3점슛 3개를 연속으로 꽂아 넣으며 흐름을 완전히 뒤집은 장면은, 저도 화면을 보다가 "아, 이 선수는 역시 클러치 상황에 강하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현중은 반대로 외곽슛 1/10이라는 극도로 부진한 슈팅 효율을 기록했습니다. 수치만 보면 '좋지 않은 경기'처럼 읽히지만, 저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현중은 이날 15개의 리바운드를 잡았는데, 그것도 1쿼터에만 9개를 기록하며 페이스 자체를 장악했습니다. 리바운드(rebound)란 슛이 골대를 맞고 튕겨 나온 공을 확보하는 플레이로, 공격 리바운드는 추가 득점 기회를, 수비 리바운드는 상대 공격권 차단을 의미합니다. 한 선수가 15개를 혼자 가져갔다는 것은 팀의 골 밑 장악력이 그만큼 일방적이었다는 뜻입니다.
팀 전체로 보면 어시스트(assist) 23-12로 필리핀을 두 배 가까이 압도했습니다. 어시스트란 득점으로 직결된 패스를 공급한 횟수를 의미하며, 이 수치가 높다는 것은 특정 선수에게 공격이 집중되지 않고 볼이 빠르게 이동했다는 신호입니다. 마줄스 감독이 지향하는 빠른 볼 무브먼트와 팀 농구가 조금씩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는 근거로 저는 이 숫자를 가장 의미 있게 읽었습니다. 리바운드에서도 49-41로 앞섰습니다.
- 이정현: 3점슛 7/11, 27점 5어시스트 — 4쿼터 연속 3점포로 승부 결정
- 이현중: 슈팅 1/10이지만 15리바운드로 팀 장악력에 기여
- 여준석: 8점 7리바운드로 안정적인 빅맨 역할 수행
- 팀 어시스트 23개 — 마줄스 스타일의 팀 농구가 윤곽을 잡는 중

3쿼터 5분 무득점, 아시안게임에서 같은 장면이 나오면
이 경기에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장면은 3쿼터였습니다. 한국은 후반 시작 후 약 5분 동안 득점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필리핀이 이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해 점수 차는 유지됐고 한국이 결국 3쿼터를 57-44로 마쳤지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상대가 완전체가 아닌 상황에서도 공격 흐름이 5분 가까이 멈춘다는 것은 단순한 슈팅 부진으로 넘기기가 어렵습니다.
오펜시브 시스템(offensive system), 즉 공격 전술 체계가 완전히 팀에 체화되지 않은 구간에서 생기는 정체입니다. 마줄스 감독이 부임한 지 약 9개월, 외국인 감독 특유의 볼 이동 중심 전술이 선수들에게 완전히 체화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한 것이 현실입니다. 이번 필리핀전에서 그 빈틈이 드러난 것이고, 저는 이 부분이 아직 팀이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봅니다.
아시안게임 조별리그에서 한국은 9월 10일 사우디아라비아, 11일 인도네시아, 13일 일본을 차례로 만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인도네시아전에서는 이런 정체 구간이 묻힐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전은 다릅니다. 일본은 최근 FIBA 월드컵 본선에도 꾸준히 진출하며 아시아 농구의 판도를 바꾸고 있는 팀이고, 토너먼트 대진까지 좌우할 수 있는 사실상의 첫 번째 진검승부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5분 무득점 구간이 일본전에서 반복된다면 그때는 점수 차가 버텨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12년 만의 금메달, 이번 세대라면 가능한 이유
한국 남자농구의 마지막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2014년 인천 대회입니다. 당시 결승에서 이란을 79-77로 꺾었습니다. 이후 2018 자카르타·팔렘방 대회에서는 이란에 준결승에서 패해 동메달에 그쳤고, 2022 항저우 대회에서는 중국에 8강에서 무릎을 꿇으며 최종 7위라는 씁쓸한 성적을 남겼습니다. 대표팀의 국제대회를 꾸준히 지켜본 입장에서 그 시간이 짧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번 대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조심스러우면서도 기대가 앞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현중·이정현·여준석은 모두 FIBA 무대에서 실제 국제 경험을 쌓아온 선수들입니다. 특히 이정현은 이미 여러 차례 국제무대에서 클러치 능력을 증명했고, 이현중은 리바운드와 수비 기여도에서 아시아 수준을 넘는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제 경험상 국제대회에서 버티는 팀은 스타 개인기보다 팀 밸런스가 잡혀 있는 팀이었고, 이번 평가전의 어시스트 수치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줄스 감독 체제에서 한국 남자 농구는 처음으로 외국인 헤드코치(head coach) 아래 아시안게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헤드코치란 팀의 전술·선수 기용·경기 운영 전반을 책임지는 최고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라트비아 출신의 마줄스가 유럽식 볼 이동 중심 농구를 한국 선수들에게 이식하는 과정에서 분명 시행착오가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대한민국농구협회가 제시한 목표는 처음부터 금메달이었고, 그 목표를 향해 준비해온 흐름은 이번 평가전에서도 어느 정도 확인됩니다(출처: 연합뉴스).
9월 6일 필리핀과 2차전을 마치면 대표팀은 곧바로 일본으로 출국합니다. 2차전에서 3쿼터 숙제를 어느 정도 풀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아시안게임 본무대를 향한 기대를 더 키워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한국 농구 아시안게임 2026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A.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9월 10일 사우디아라비아, 11일 인도네시아, 13일 일본을 순서대로 상대합니다. 특히 일본전이 토너먼트 대진까지 좌우할 가능성이 높아 사실상 첫 번째 진검승부로 꼽힙니다. 대표팀은 9월 7일 일본으로 출국합니다.
Q. 필리핀 평가전 결과가 아시안게임 실력과 같다고 볼 수 있나요?
A.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방한 멤버에는 직전 FIBA 월드컵 예선 참가자 3명만 포함됐고, 핵심 귀화선수 저스틴 브라운리도 부상으로 아시안게임 출전 자체가 불확실합니다. 26점 차는 두 팀의 절대적 전력 격차가 아니라, 이날 멤버 구성의 차이를 반영한 결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Q. 마줄스 감독이 한국 농구 역사상 첫 외국인 감독이라고요?
A. 맞습니다. 라트비아 출신 니콜라이스 마줄스 감독은 지난해 12월 선임되며 한국 남자농구 역사상 첫 외국인 헤드코치가 됐습니다. VEF 리가 감독으로 2015년 라트비아 리그 우승을 경험했으며, 대한민국농구협회가 그에게 제시한 목표 중 하나가 2026 아시안게임 금메달입니다.
Q. 한국 남자농구 아시안게임 마지막 금메달이 언제인가요?
A.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입니다. 당시 결승에서 이란을 79-77로 꺾으며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후 2018 동메달, 2022 7위로 성적이 내려앉았고, 2026 아이치·나고야 대회에서 12년 만의 금메달 탈환을 노리고 있습니다.
결론
81-55 완승이라는 결과 뒤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습니다. 어시스트 23개와 이정현의 클러치 능력은 마줄스 농구가 조금씩 팀에 녹아들고 있다는 근거이고, 3쿼터 5분 무득점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신호입니다. 제 경험상 국제대회에서 강팀과 붙을 때 그 '비어 있는 5분'이 가장 먼저 드러납니다.
이번 세대의 한국 농구는 분명 12년 전과는 다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9월 6일 2차전에서 3쿼터 정체 구간을 어떻게 수정하는지, 그리고 아시안게임 본무대에서 일본을 어떻게 넘는지가 금메달 탈환의 핵심 분수령이 될 것입니다. 오랜만에 기대가 앞서는 대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