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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어 78-76. 숫자만 보면 평범한 2점 차 승리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네 숫자 뒤에 숨겨진 맥락을 하나씩 찾아보다가 결국 멈추지 못했습니다. 같은 대회에서 이미 한 번 패했던 상대와 우승컵을 놓고 다시 만나, 전반에 뒤지고 종료 2분 전에도 리드를 내줬다가, 마지막 5.2초짜리 드라마로 28년의 기다림을 끝낸 경기. 1997년 리야드 결승은 그런 경기였습니다.

리야드 결승의 배경 — 한국은 이미 한 번 졌었다
오래된 명경기를 찾을 때 저는 보통 최종 스코어부터 검색합니다. 그런데 이번엔 그 방식이 오히려 독이 됐습니다. '78-76 승리'라는 결과만 먼저 보니 별 감흥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같은 대회 8강 상위리그 기록을 찾아봤더니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국은 결승 며칠 전 일본에 83-89로 패했습니다. 즉 결승은 단순한 한일전이 아니라 리턴매치였습니다. 리턴매치(rematch)란 이전 대결에서 패한 팀이 상대를 다시 만나 설욕을 노리는 경기를 뜻합니다. 이 사실을 알고 나서야 결승 스코어가 완전히 다른 무게로 느껴졌습니다.
대회 배경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1997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열린 제19회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는 현재의 FIBA 아시아컵에 해당하는 대회입니다. FIBA(국제농구연맹)는 세계 농구를 총괄하는 기구로, 아시아선수권은 FIBA가 주관하는 아시아 대륙 최고 권위의 농구 대회입니다. 당시 한국이 이 대회 정상에 오른 것은 1969년 방콕 대회 이후 무려 28년 만의 일이었습니다(출처: 매일신문 1997년 9월 보도).
대표팀 사정도 온전하지 않았습니다. 강동희, 이상민, 문경은, 전희철, 정재근, 우지원, 김승기 등 당시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이 있었지만, 현주엽은 부상으로 정상 출전이 어려웠고 서장훈도 중이염으로 컨디션 문제가 있었습니다. 골밑 전력에 구멍이 생긴 채로 아시아 최강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 대회: 제19회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 (현 FIBA 아시아컵), 1997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 8강 상위리그: 한국 83-89 일본 (한국 패배)
- 준결승: 한국 86-72 중국 (당시 대회 6연패 도전 중이던 중국을 격파)
- 결승: 한국 78-76 일본 (28년 만의 아시아 정상 복귀)
결승 핵심 분석 — 화려하지 않아서 더 강했던 팀
제가 이 경기 기록을 따라가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한국이 자신의 약점을 억지로 메우려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일본은 217cm 장신 야마사키를 앞세워 리바운드와 골밑을 장악하려 했습니다. 높이에서 밀리는 팀이라면 흔들릴 수 있는 압박이었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포인트가드 강동희와 이상민의 볼 핸들링과 페이스 조절, 전희철과 정재근의 끊임없는 움직임, 그리고 빠른 공수 전환으로 경기를 운영했습니다. 볼 핸들링(ball handling)이란 경기 흐름을 통제하기 위해 공을 다루는 기술로, 가드진의 볼 핸들링 능력은 팀 전체의 공격 리듬을 결정합니다. 전반 내내 일본에 뒤지면서도 한국이 무너지지 않았던 건 이 가드진이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저는 봅니다.
전반이 끝났을 때 점수는 일본 44-41. 3점 차였습니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준결승에서 중국을 14점 차로 꺾었던 팀이 다음 날 결승에서 전반을 뒤지고 있었다는 게 흥미로웠습니다. 양 팀은 후반 내내 리드를 일곱 차례나 주고받는 접전을 벌였고, 종료 2분 전 일본이 76-74로 앞서는 순간까지 왔습니다.
그 고비를 넘긴 게 문경은의 동점 득점과 전희철의 드라이브 인이었습니다. 드라이브 인(drive-in)이란 공을 가진 선수가 수비수를 돌파해 골밑으로 파고드는 플레이를 말합니다. 종료 1분 3초 전 전희철의 이 드라이브 인 득점이 경기 최후의 필드골이 됐습니다. 전희철은 결승에서 20점을 올렸고 대회 MVP에 선정됐습니다(출처: FIBA 공식 기록).

마지막 5.2초 — 리바운드 하나가 28년을 끝냈다
이 경기를 찾아보기 전까지 저는 농구의 명장면이라고 하면 버저비터나 3점슛 같은 화려한 장면을 먼저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1997년 리야드 결승의 마지막 장면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종료 5.2초. 78-76으로 앞선 한국이 끝나가는 경기를 지켜보는 순간, 일본의 오리모 다케히코가 자유투 2개를 얻었습니다. 두 개를 모두 성공하면 동점, 연장전으로 가는 상황이었습니다. 첫 자유투가 림을 외면했습니다.
일본 벤치가 선택한 것은 두 번째 자유투를 의도적으로 실패시키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른바 '미스 온 퍼포스(miss on purpose)', 즉 의도적 자유투 실패 전술입니다. 이 전술은 공격 리바운드를 자국 선수가 잡아 곧바로 2점을 만드는 것을 노리는데, 남은 시간이 5초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본이 선택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오리모가 던진 공이 림을 맞고 튀어나왔습니다. 제가 이 장면을 당시 기사 표현으로 머릿속에서 재구성하면서 느꼈던 건, 그 공이 어느 방향으로 튀는지에 따라 결과가 완전히 달라진다는 긴장감이었습니다. 공격 리바운드(offensive rebound)란 자기 팀이 시도한 슛이 실패했을 때 공격 측이 공을 다시 잡는 것으로, 이 상황에서는 일본이 반드시 잡아야 하는 공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공을 잡은 선수는 한국의 포인트가드 강동희였습니다. 수비 리바운드를 확보한 순간, 경기가 끝났습니다. 영상이 없어도 이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지는 건 당시 기자가 기록해둔 '5.2초', '첫 자유투 실패', '마지막 리바운드'라는 문장들 덕분이었습니다. 오래된 경기일수록 결과보다 그 경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는 걸 이번에 제대로 느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1997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는 지금으로 치면 어떤 대회인가요?
A. 현재의 FIBA 아시아컵에 해당하는 대회입니다. FIBA가 주관하는 아시아 대륙 최고 권위의 남자 농구 대회로, FIBA 공식 기록에도 1997년 우승팀은 대한민국으로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같은 대회의 계보가 이어지고 있으니, 당시 우승의 의미를 현재 기준으로도 충분히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Q. 한국이 같은 대회에서 일본에 먼저 졌다는 게 사실인가요?
A. 사실입니다. 결승 전 8강 상위리그에서 한국은 일본에 83-89로 패했습니다. 그래서 결승은 단순한 한일전이 아니라 같은 대회 안에서의 리턴매치였습니다. 이 사실을 먼저 알고 결승 스코어를 보면 78-76이라는 숫자가 완전히 다른 무게로 느껴지실 겁니다.
Q. 마지막 자유투 장면에서 일본이 의도적으로 실패시켰다는 게 농구 규칙상 가능한 건가요?
A. 네, 농구 규칙상 자유투를 의도적으로 짧게 던지거나 림을 향해 각도를 틀어 실패시키는 것은 반칙이 아닙니다. 다만 이 전술이 성공하려면 공격 리바운드를 반드시 확보해야 합니다. 1997년 결승에서 그 리바운드를 강동희가 잡았기 때문에 전술 자체가 무용지물이 됐습니다.
Q. 당시 한국이 준결승에서 만난 중국은 얼마나 강한 팀이었나요?
A. 당시 중국은 아시아선수권 6연패를 노리고 있던 아시아 최강이었습니다. 한국은 전반 36-42로 뒤지다가 후반에 완전히 흐름을 바꿔 86-72로 꺾었습니다. 한국이 아시아선수권에서 중국을 이긴 것이 1985년 이후 12년 만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승 못지않게 준결승도 상당한 이변이었습니다.
결론
이번에 1997년 리야드 결승을 찾아보면서 제 경험상 오래된 경기는 결과보다 과정을 따라가는 방식이 훨씬 재미있다는 걸 다시 확인했습니다. 최종 스코어만 봤을 때는 그냥 2점 차 승리였는데, 당시 기사에서 '종료 1분 3초', '5.2초', '리바운드'라는 기록을 하나씩 이어붙이자 완전히 다른 경기가 됐습니다.
화려한 덩크도 없고 극적인 3점슛도 아니었습니다. 마지막을 결정한 건 수비 리바운드 하나였습니다. 열세였던 팀이 약점을 없애는 대신 자신들이 잘하는 농구를 끝까지 유지했고, 가장 기본적인 플레이로 우승을 확정했습니다. 앞으로 오래된 명경기를 찾아볼 때도 저는 스코어보다 그 점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먼저 들여다보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