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984년 NBA 드래프트에서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는 2순위 지명권으로 마이클 조던 대신 샘 보위를 선택했습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역사상 가장 어이없는 선택처럼 보이지만, 저도 처음엔 그렇게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상황을 하나씩 들여다보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포틀랜드의 선택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었고, 그 논리 안에는 우리가 일상에서도 흔히 반복하는 실수가 담겨 있었습니다.
후회 — "그때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
저도 회사에서 일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팀에 당장 필요한 역할이 있었고, 그 자리를 채우는 데 집중하다 보니 더 큰 가능성을 가진 사람을 흘려보낸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분명히 최선이라고 생각했는데, 몇 달이 지나고 나서야 그게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찜찜함이 꽤 오래갔습니다.
포틀랜드도 그 감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1984년 드래프트 당시 포틀랜드에는 이미 클라이드 드렉슬러라는 뛰어난 가드가 있었고, 짐 팩슨이라는 검증된 가드도 있었습니다. 팀에 부족한 건 분명 센터였습니다. 그래서 포틀랜드는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가드 마이클 조던 대신 켄터키 대학 출신의 216cm 센터 샘 보위를 선택했습니다.
이 선택은 당시 NBA의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었습니다. 1980년대 NBA에서는 센터 포지션의 가치가 지금보다 훨씬 높게 평가되던 시절이었습니다. 빅맨 중심의 팀 구성이 상식처럼 통하던 시대였고, 포틀랜드는 그 기준 안에서 충분히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셈이었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시카고 불스 관계자조차 포틀랜드가 보위를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알려진 대로입니다. 그 선택 이후 포틀랜드는 수십 년 동안 "그때 조던을 뽑았다면"이라는 질문을 달고 살아야 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이런 후회는 결과를 알고 나서야 생기는 것이지 그 순간에는 정말 알기가 어렵습니다.

재능 — 조던이 보여준 건 차원이 달랐다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1984년 드래프트에서 당시 최고 유망주는 조던이 아니라 하킴 올라주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올라주원은 휴스턴 대학에서 213cm 센터로 뛰며 이미 리그 최고의 신인으로 평가받고 있었고, 1순위 지명권을 가진 휴스턴 로키츠는 예상대로 그를 선택했습니다. 조던은 당시 드래프트에서 "좋은 선수"였지만, 올라주원처럼 절대적인 1순위 평가를 받지는 못했습니다.
여기서 드래프트(Draft)란 NBA 구단들이 순번대로 신인 선수를 지명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성적이 나쁜 팀이 먼저 유망주를 고를 수 있도록 설계된 선수 선발 방식입니다. 이 제도 안에서 포틀랜드는 자신들의 순번에서 팀 상황을 고려한 선택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조던의 데뷔 시즌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습니다. 신인 시즌에 평균 28.2득점, 6.5리바운드, 5.9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신인왕(NBA Rookie of the Year)에 올랐고, 데뷔 첫 해부터 시카고를 플레이오프로 이끌었습니다. 신인왕이란 해당 시즌 신인 선수 중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수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이후의 기록은 더 압도적이었습니다. NBA 공식 기록에 따르면 조던은 정규시즌 MVP(Most Valuable Player, 리그 최우수 선수)를 5회 수상했고, NBA 우승을 6회 달성했습니다. 특히 우승한 여섯 번 모두 파이널 MVP에 선정되는 유례없는 기록을 남겼습니다(출처: NBA 공식).
제 경험상 이런 수준의 재능은 사전에 완벽하게 예측하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저도 사람을 볼 때 현재의 역할이나 직책에만 집중하다가 나중에 "이 사람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줄은 몰랐다"는 말을 속으로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 신인 시즌: 평균 28.2득점, 6.5리바운드, 5.9어시스트, 신인왕 수상
- 정규시즌 MVP 5회, 득점왕 10회
- NBA 우승 6회 — 6번 모두 파이널 MVP 수상
- 1984년 드래프트 당시 최고 유망주 평가는 올라주원이 받았음
선택 — 포지션이냐, 재능이냐
포틀랜드의 선택이 남긴 가장 큰 질문은 이것입니다. 팀에 필요한 포지션을 채워야 할까, 아니면 포지션이 겹치더라도 가장 뛰어난 재능을 선택해야 할까. 지금은 NBA 드래프트 전략에서 BPA(Best Player Available) 원칙이 널리 통용됩니다. 여기서 BPA란 팀의 현재 필요와 무관하게 그 순간 가장 뛰어난 선수를 먼저 선택하는 전략을 말합니다. 포틀랜드의 사례가 이 원칙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반면교사로 자주 등장합니다.
생각해보면, 드렉슬러와 조던이 함께 뛰는 포틀랜드를 상상하는 것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드렉슬러 역시 이후 NBA를 대표하는 슈팅가드로 성장했습니다. "이미 좋은 가드가 있으니 또 다른 가드는 필요 없다"는 판단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를 놓친 결정적 이유가 됐습니다.
저도 일을 하면서 비슷한 함정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특정 역할에 이미 누군가가 있다는 이유로 더 뛰어난 가능성을 가진 사람을 처음부터 배제한 경험입니다. 그때는 효율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보면 틀 안에 갇혀 있었던 겁니다. 제 경우엔 그 뒤에 그 사람이 다른 곳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걸 보고 나서야 제 판단의 한계를 실감했습니다.
포틀랜드 사례를 들여다보면서 저는 한 가지를 배웠습니다. 정말 뛰어난 재능을 마주했을 때는 기존의 틀을 잠시 내려놓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존 구조를 흔드는 결정은 언제나 내부의 저항을 동반하니까요. 하지만 그 저항을 넘지 못하면 조던 같은 기회는 그냥 지나칩니다.

후견 편향 — 결과를 알고 나서야 명확해 보이는 것들
이 이야기에서 제가 가장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후견 편향(Hindsight Bias)입니다. 후견 편향이란 결과를 알고 난 뒤 "처음부터 그렇게 될 줄 알았다"고 느끼는 심리적 왜곡을 말합니다. 이 편향 때문에 우리는 과거의 선택을 실제보다 훨씬 쉽게 비판하게 됩니다.
인지심리학 연구들에 따르면 사람들은 결과를 알고 난 후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고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포틀랜드를 손가락질하기는 쉽지만, 1984년 그 순간에 서 있었다면 과연 조던을 선택할 수 있었을까를 솔직하게 물어봐야 합니다(출처: American Psychological Association).
샘 보위를 두고도 같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보위는 신인 시즌에 76경기에 출전해 평균 10.0득점, 8.6리바운드, 2.7블록을 기록했고 NBA 올루키 팀(All-Rookie Team)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올루키 팀이란 해당 시즌 신인 선수 중 최고의 활약을 보인 선수들로 구성되는 올스타 형식의 팀입니다. 이후 부상이 발목을 잡기는 했지만, NBA에서 10시즌 동안 511경기를 소화한 선수는 일반적인 기준에서 충분히 성공한 프로입니다. 단지 비교 대상이 마이클 조던이었을 뿐입니다.
제 경험상, 결과가 좋으면 그 과정의 판단도 전부 옳았다고 느끼고, 결과가 나쁘면 처음부터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기억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게 얼마나 왜곡된 시각인지는 당해보고 나서야 알게 됩니다. 중요한 건 그때 어떤 정보와 논리로 결정을 내렸는지를 냉정하게 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포틀랜드는 왜 마이클 조던 대신 샘 보위를 선택했나요?
A. 포틀랜드에는 이미 클라이드 드렉슬러와 짐 팩슨이라는 가드가 있었고, 팀에 부족한 건 센터였습니다. 당시 NBA에서는 빅맨 중심의 팀 구성이 상식처럼 통했고, 보위는 켄터키 대학에서 주목받은 유망주였습니다. 결국 포지션 필요에 따른 선택이었고, 당시로서는 나름의 논리가 있는 결정이었습니다.
Q. 샘 보위는 NBA에서 완전히 실패한 선수인가요?
A. 그렇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보위는 부상으로 포틀랜드에서 고전했지만, 이후 뉴저지 네츠와 LA 레이커스를 거치며 NBA에서 총 10시즌, 511경기를 소화했습니다. 통산 평균 10.9득점, 7.5리바운드, 2.1어시스트는 일반적인 기준에서 충분히 훌륭한 커리어입니다. 단지 바로 다음 순번에 마이클 조던이 있었기 때문에 평생 비교당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Q. 1984년 NBA 드래프트에서 마이클 조던이 1순위가 아니었던 이유가 뭔가요?
A. 당시 드래프트 최고 유망주는 휴스턴 대학 출신의 센터 하킴 올라주원이었습니다. 213cm의 빅맨으로 이미 대학 무대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인 올라주원이 1순위 평가를 받았고, 조던은 뛰어난 가드였지만 올라주원만큼의 절대적인 1순위 평가는 아니었습니다. 결과를 알고 난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시 드래프트 평가 기준에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습니다.
Q. BPA 원칙이란 무엇이고, 왜 포틀랜드 사례와 연결되나요?
A. BPA(Best Player Available)란 드래프트에서 팀의 현재 필요와 상관없이 그 시점에 가장 뛰어난 선수를 먼저 선택하는 전략입니다. 포틀랜드는 팀에 필요한 포지션(센터)을 우선했다가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놓쳤고, 이 사례는 BPA 원칙의 중요성을 설명할 때 가장 자주 인용되는 사례가 됐습니다.
결론
포틀랜드의 1984년 선택은 단순히 "나쁜 선택"이 아니라, 미래를 모르는 상태에서 현재의 정보로 최선을 다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이 이야기가 40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회자되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결과가 워낙 극단적이었기 때문에 교훈이 선명하게 보일 뿐, 그 선택의 순간은 우리가 일상에서 반복하는 결정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 두 가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하나는 지금 당장 필요한 것만 채우려는 관성에서 벗어나 그 사람이나 기회 자체의 가능성을 먼저 보는 시각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겸손함입니다. 좋은 결정은 미래를 완벽히 예측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www.nba.com/news/history-nba-legend-michael-jordan?utm_source

